18기 중/ 쌍검
Автор: 맨발의청춘
Загружено: 26 февр. 2019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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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조금은 알고있다에 대하여.....일본에서는 예로부터 무(武)를 숭상해 칼을 잘쓰는 사람들을 무사(武士)라고 하였고, 그들의 행적이 마치 전설처럼 퍼저나간 경우가 아주 흔하다.이를테면 미야모토 무사시가 두 자루의 칼 (二刀流)를 휘두르면 날아가는 파리가 두 동강 난다는 식의 신격화된 실화를 바탕으로 칼을 상찬하는 설화가 사람들의 가슴깊이 자리잡고 칼의 문화가 발달하게 되는것이다.그러나 중국의 문물과 제도가 조선 반도를 통하여 일본에 정착하게 된 것이 수없이 많지만 유독 과거 제도만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칼을 잘쓰는 사람들이 세상의 일들을 주도하는 판국에 글[文士]을 잘하는 사람들을 길러 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도쿠가와 막부 시절만 해도 에도[江戶]지금의 도쿄]에는 검술도장이 성하여 각기 무슨 류 ]라는 검술의 면허를 주어 전설적인 칼잡이를 길러내곤 하였다...생략 십팔기(十八技)라고 일컬어지는 무술은 어느나라 무술인가 십팔기가 조선 고유의 무술이라는 사실을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 조선은 문을 숭상하는 나라여서 문신을 우대했던 까닭으로 무신쪽으로는 인재가 모이지 않았다.그러므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엄청난 국란을 당하여도 병조판서와 같은 요직을 문신들이 맡곤 하였다.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많은 병서를 읽는다 해도 실제 전투를 지휘하기에는 많은 괴리가 있을수 밖에 없었다.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국란을 당했을 때의 국방장관이 문신이었던 탓에 그 피해가 컷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영조는 대리청정을 하던 사도세자에게 명하여 조선의 고유한 무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책으로 엮을것을 명했다.사도세자는 총력을 기울여 부왕의 뜻을 받들었으나 역모로 몰려 뒤주에 갇혀 죽는 형벌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진 못하였으나 [무예신보]라는 18기를 정립한바 있었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세손시절부터 무예에 관심이 많았고 스스로 단련하여 자신을 해치려는 세력과 여러번 싸운적도 있었다.................생략 ..-역사란 무었인가 중에서- 신봉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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