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기독교강요 3권 11.21-23]
Автор: 언약성경장로교회
Загружено: 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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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성경장로교회 주일성경공부 (2025.9.14)
용명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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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3 –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방법: 어떤 유익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어떤 결과가 따르는가
Chapter 11. 믿음으로 인한 칭의: 용어와 문제에 대한 정의
(다만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서만 죄가 용서된다. 21-23)
21. 성경의 판단에 따른 우리의 칭의
믿음의 의는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이 화해는 바로 죄의 용서라고 정의한 말이 얼마나 진실인가를 확인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죄인인 동안은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위에 머문다는 원리로 항상 돌아가야만 한다.
이사야는 이 원리를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59:1-2) 라고 잘 표현하였다. 죄는 사람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며, 하나님의 얼굴을 죄인으로부터 돌리시게 한다.
그러므로 사도는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를 회복할 때까지는 하나님의 원수라고 가르친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로마서 5:10)
주께서 받아들여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신 사람은 의롭다 칭하신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시지 않고는 그를 자신의 은혜 가운데 받아들이거나 자신과 결합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일이 죄의 용서로써 이루어진다고 부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아들이시는 사람들은 오직 죄의 용서로 흠이 씻길 때에 그들이 정결하게 된다는 사실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의는 한 마디로 “죄의 용서”라고 할 수 있다.
22. 칭의와 죄의 용서 사이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성경의 증거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1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여기서 바울은 의와 화해를 구별하여 말하지 않고 서로 한 쪽이 다른 쪽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심으로써 우리를 자신과 화목케 하신다는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의롭다 하실까를 더 이상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위와는 별도로 의를 전가해 주신다는 것을 바울은 다윗의 증언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 (로마서 4:6-7; 시편 32:1)
바울은 죄의 용서와 의를 연결하여, 두 가지가 완전히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38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사도행전 13:38-39)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의 의는 덕의 완성에 있지 않고 죄의 용서에 있다.” – 어거스틴
23. 우리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
우리의 의는 우리 자신 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우리가 의를 소유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의의 풍요함을 완전히 지닌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9)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우리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고 선언하는 것은 우리의 의를 그리스도의 순종에 맡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의 순종으로 여겨진다.
암브로시우스가 이러한 예로 야곱의 축복을 아름답게 설명했다. 야곱은 자기에게 장자권이 없는 것을 알고 형의 옷 안에 숨어 향기 나는 형의 겉옷을 입은 후에 아버지 이삭의 호감을 얻어 축복을 받았다.
(창세기 27: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이삭이 옷의 향기를 맡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행위에 의하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육신의 약함은 행위를 방해하나 믿음의 광채는 죄의 용서를 얻게 하며 행위의 과오를 덮기 때문이다.” – 암브로시우스
참으로 이것은 진리이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로써 좋은 냄새를 풍기고, 우리의 악을 그의 완전성으로 덮고 묻어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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