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키야의 붓디(Buddhi) :인도 철학 산책
Автор: 진리 음악으로 오다 TruthTunes
Загружено: 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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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논문
1. 불교와 미맘사 사이에 끼인 상캬의 정체성
『상캬까리까』 제1~2송에 대한 『육띠디삐까』 주석에 등장하는 불교도·미맘사학파와의 논쟁 분석 -
이 논문은 상캬(Sāṃkhya) 학파의 가장 중요한 주석서인 『육띠디삐까(Yuktidīpikā)』(7세기 추정)에 나타난 논쟁을 분석하여, 상캬 학파가 불교와 미맘사(Mīmāṃsā)라는 거대한 두 전통 사이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는지 고찰합니다,.
가. 불교도와의 논쟁: 해탈의 목표와 동기 공유 『육띠디삐까』의 저자는 『상캬까리까』 제1송에서 제시하는 "세 가지 고통의 압박으로 인해 해탈을 추구한다"는 주장에 대한 불교도의 비판을 소개합니다.
• 불교도의 비판: 불교도는 해탈이란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三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므로 단순히 고통을 제거하는 것은 불완전하다고 비판합니다. 또한, 천상의 즐거움이나 명상의 즐거움을 고려하지 않는 자에게도 해탈에 대한 열망이 생기므로, '고통'만이 탐구열의 원인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 상캬의 대응과 수용: 『육띠디삐까』 저자는 표면적으로는 불교의 삼계설을 부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교도의 비판을 수용합니다. 그는 『상캬까리까』 제2송을 재해석하여, 천상의 즐거움(베다 제식의 결과)과 명상의 즐거움 또한 '소멸'과 '우열'이 있는 불완전한 것임을 인정합니다. 즉, 상캬 학파 또한 불교와 마찬가지로 윤회하는 세계 전체(즐거움 포함)를 벗어나는 '출세간적' 목표와 동기를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나. 미맘사 학파와의 논쟁: 베다의 권위와 제식 비판 미맘사 학파는 상캬가 베다 제식을 '불결하다(aviśuddhi)'고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베다(성언량)를 올바른 인식 수단으로 인정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공격합니다.
• 미맘사의 압박: 미맘사 학파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한다면 제식을 비판해서는 안 되며, 제식을 비판한다면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양자택일을 강요합니다.
• 상캬의 대응과 타협: 『육띠디삐까』 저자는 "우리는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며 정통 바라문 진영에 남기를 선택합니다. 그는 '불결함'이라는 단어가 베다 제식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제식 과정에서 수반되는 살생으로 인해 수행자(상캬)들이 느끼는 내면의 '슬픔'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 해석합니다,.
다.
결론: 샌드위치 된 상캬의 정체성 『육띠디삐까』에 나타난 상캬 학파의 정체성은 불교의 '출세간적 지향성'과 미맘사의 '사회적 정통성(베다 권위)' 양자를 모두 수용하려는 시도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불교처럼 윤회로부터의 완전한 해탈을 추구하면서도, 미맘사처럼 바라문교의 테두리 안에 머물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베다 제식에 비판적인 바라문들"**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인도 철학에서 자아 개념의 공유와 차별
베단타의 일원론과 상키야의 이원론을 중심으로 -
이 논문은 인도 정통 철학의 양대 산맥인 베단타(일원론)와 상키야(이원론)가 '자아(Self)'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비교하며, 두 학파가 본체론적으로는 대립하지만 인식론과 해탈론의 구조에서는 핵심 개념을 공유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가. 보편적 자아의 공유: 비활동성의 순수 의식 두 학파 모두 자아(Ātman 또는 Puruṣa)에 대한 개념을 우파니샤드라는 공통된 원천에서 도출합니다.
• 공통된 정의: 베단타의 아트만(Ātman)과 상키야의 푸루샤(Puruṣa)는 모두 창조 활동을 하지 않는 '비활동성의 순수 의식'(akartṛ, sākṣin)으로 정의됩니다. 샹카라가 상키야를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아는 단지 목격자일 뿐 활동하지 않는다"는 기본 전제는 양쪽이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나. 개체적 사이비 자아: 붓디(Buddhi)와 개아(Jīva) 진정한 자아가 활동하지 않는다면, 현실에서 윤회하고 활동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 두 학파는 '무지'에 의해 자아로 착각되는 '사이비 자아'를 상정합니다.
• 상키야의 붓디(Buddhi): 상키야는 물질 원리인 프라크리티(Prakṛti)에서 전변된 통각, 즉 '붓디'가 활동성의 의식을 가진 주체라고 봅니다. 푸루샤의 순수 의식이 붓디에 반영(pratibimba)됨으로써, 마치 붓디가 의식을 가진 자아인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 베단타의 개아(Jīva): 베단타 또한 아트만이 무지(avidyā)와 한정적 부가물(upādhi)에 의해 개아(jīva)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샹카라에 따르면, 붓디에 아트만의 의식이 반영되어 활동성을 띠는 것처럼 보일 뿐, 진정한 자아는 활동하지 않습니다,.
• 결론: 결국 상키야의 '붓디'와 베단타의 '개아'는 모두 진정한 자아(순수 의식)가 무지나 반영을 통해 현상계에서 활동하는 주체로 오인된 것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위상을 가집니다.
다. '엄지 크기의 푸루샤' 해석의 차이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엄지 크기의 푸루샤'에 대한 해석에서 두 학파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 베단타: 이를 윤회하는 '개아(jīva)' 혹은 숭배의 대상인 '최고아(Paramātman)'가 인간 내면에 임한 것으로 해석하며, 범아일여(梵我一如)의 논리로 포섭합니다.
• 상키야: 이를 '미세신(sūkṣma-śarīra)'으로 해석합니다. 미세신은 육체가 소멸해도 존속하여 윤회의 주체가 되는 일종의 영혼 덩어리이며, 그 핵심은 붓디입니다,.
라. 종합 베단타와 상키야는 자아를 '순수하고 활동하지 않는 의식'으로 규정하고, 현실의 활동적 자아를 '무지의 소산(붓디 혹은 개아)'으로 본다는 점에서 해탈의 논리가 동일합니다. 해탈이란 붓디(혹은 업의 한정물)를 자아로 착각하는 무지에서 벗어나 순수 의식(푸루샤 혹은 아트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즉, 차별적인 형이상학적 구도 이면에는 '붓디'를 매개로 한 공유된 자아관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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