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우리는 서로의 약을 대신 먹는 것 같고 (시, 낭독 | 박진성)
Автор: 시인 박진성
Загружено: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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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딩처럼
작은 개와 둘이 있는 새벽은 동굴 같아
우리는 나란히 누워 깨어 있다
발이 부족한 이불처럼
우리는 가끔 무안해져서 자는 척
눈을 감기도 한다
그러면 동굴 안으로 파도가 치고
체리며 레몬, 이런 과일들의 표정도 몰려오고
햇빛이 부족한 화분처럼
딩딩은 몸을 웅크린다
아침은 너무 멀고 잠은 더 멀어서
넘치는 통증처럼 뒤척이다가
우리는 서로의 약을 대신 먹는 것 같고
이 방은, 이 동굴은, 지구에
단 하나 남은 병실 같고
우리는 이 새벽에 같은 종(種)이 되어서
내가 웅크리면 너는 앞발로 나를 툭툭 치기도 하고
첼로처럼
낮게, 더 낮게
새벽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서로 섞일 것처럼
[시작노트]
잠을 못 자고 새벽에 깨어 있을 때마다 곁에 딩딩이 있다. 작고 하얀 개는 내가 못 자고 안 자면 저도 안 잔다. 아마 못 자는 걸 거다. 물끄러미 딩딩은 나를 쳐다보기도 하는데 내가 눈을 감고 있으면 저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곤 한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게 있다. 그렇게 내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면 딩딩은 어느새 잠들어 작은 숨을 뱉으며 잘도 잔다. 그러다가 또 내가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하면 그 둥그렇고 까만 눈을 뜨고 나를 또 쳐다본다. 내가 잠깐씩 잠이 들면 딩딩은 어느새 나의 배 위로 올라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렇게 딩딩과 새벽을 지나곤 한다.
개도 음악을 들을까. 올라퍼 아르날즈, 막스 리히터, 내가 사랑하는 음악들을 딩딩도 같이 듣고 있는 것이다. 다음 곡, 다음 곡, 자 그 다음 곡, 시간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다. 발작이 잦은 내가 발작을 하고 있으면 딩딩은 빤히 나를 쳐다본다. 발작이 뭔지 모르는 강아지. 딩딩은 발작이 무엇인지 몰랐으면 좋겠다. 격렬하게 고개를 뒤로 젖히다가 명치 끝을 종주먹으로 치다가 숨을 몰아쉬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딩딩은 몰랐으면 좋겠다. 이 세계의 끄트막 벼랑 위에 알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 무엇인지, 심장 안쪽으로 실금이 그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관자놀이 근처를 칼끝으로 긁어내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딩딩은 정말 몰랐으면 좋겠다.
딩딩은, 아프면, 몸을 최대한으로 웅크린다. 나는 처음에 그게 아픈 건 줄 몰랐다. 딩딩이 몸을 최대한으로 웅크리고 있으면 나는 녀석의 배를 문질러주기도 하고 손가락 끝으로 약간의 힘을 주어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통증은 우리가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언어다. 내가 모르는 딩딩의 통증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 조용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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