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K] 오사카에 숨어있는 재일제주인의 고된 삶 / KBS 2025.04.24.
Автор: 캔디 KANDY_KBS제주
Загружено: 24 ап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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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 보셨듯이 4•3과 관련해 바다 건너 타국, 일본에서 언제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있는 재일제주인들의 사연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일본 오사카 현지를 다녀온 나종훈 기자와 더 자세한 이야기 나눠봅니다.
나 기자, 이번에 일본 오사카에는 어떤 일로 다녀온 거죠?
[기자]
네, 지난 주말 일본 오사카 현지에서 제77주년 4.3위령제가 열렸는데요.
이번에 제주도기자협회에서 역사기행 연수로 4.3위령제에 참가하게 되면서 앞선 리포트를 전해드렸던 안서연 기자와 저를 포함해 모두 제주에서 14명의 기자가 함께 하게 됐습니다.
사실, 일본 오사카 위령제는 1998년부터 열렸는데요.
도내 기자들이 개별적으로 참석한 적은 있었어도 이번처럼 기자협회 차원에서 다 같이 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앵커]
그럼, 이번 오사카 역사기행 연수에서 어떤 것들을 보고 왔나요?
[기자]
일본 오사카의 대표 명소인 오사카성 일대를 비롯한 한국 국제시장이 있는 츠루하시, 재일제주인, 재일조선인들이 거주하는 코리아타운, 4.3위령제가 열린 통국사 등을 방문하고 왔습니다.
[앵커]
어떻게 보면 통국사를 빼고는 오사카의 관광지를 둘러보고 온 것 같은데, 어떤 것들을 배우고 왔나요?
[기자]
네, 제가 이전에도 휴가 등으로 오사카를 몇 차례 방문하긴 했었는데 이번 역사기행 연수는 참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일전에 오사카성이나 츠루하시 같은 곳을 방문하긴 했었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고단했던 재일제주인들의 삶은 미처 보고 오지 못했었는데요.
일본의 대표 명소인 오사카성에는 재일제주인, 또 재일조선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더라고요.
오사카성 입구 한편으로 사회운동 현창탑 이라는게 있는데요.
오사카지역 노동자와 농민, 시민단체 등의 모금으로 1970년대 준공된 탑인데요.
여기에 한국인으로는 김문준과 조몽구의 이름이 현창돼 있었습니다.
김문준과 조몽구, 이 두분은 모두 제주인인데요.
1920~30년대, 일본에서 노동운동에 나섰던 인물들로, 당시 일본 정부로부터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옥고를 치른 분들입니다.
그만큼 이 당시에 일종의 하층민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로서 조선인들, 특히 제주인이 많이 존재했고, 이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섰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 오사카성에는 도시락 폭탄으로 유명한 윤봉길 의사가 수감됐던 오사카 육군 위수형무소 터가 있고요.
지금은 오사카성 천수각 옆에 식당 건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본 육군 제4사령부 건물도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오사카성 내 한쪽에 세워진 '전쟁의 흉터' 기록비였는데요.
오사카시가 세웠거든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사카성에 주둔하던 군 사령부와 무기공장에 대한 내용도 담겨있고, 1,300명 이상의 조선인을 강제징용했던 사실 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전쟁에서 우리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람들에게 큰 재앙과 고통을 안겨줬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적혀있더라고요.
기억, 기록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앵커]
단순히 관광 명소로만 생각했던 곳에 그런 역사적 장소가 함께 있는지는 몰랐네요.
오사카 위령제 이야기도 해주시죠?
[기자]
네, 이번 오사카 4.3위령제는 통국사라는 사찰에서 열렸습니다.
텐노지라는 오사카 시내 한복판에 있는 사찰인데요.
2018년 재일4.3유족회가 직접 4.3희생자 기념비를 세운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재일4.3유족회 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대부분 4.3의 광풍을 피해서 일본으로 건너온 재일교포 1세나 2세였습니다.
또, 4.3이 끝난 이후에도 아버지가 희생자라는 등의 이유로 연좌제 피해를 보면서 더는 한국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해서 새로운 기회를 쫓아 일본으로 건너간 분들입니다.
참 안타까웠던 것은 이들이 이른바 빨갱이라는 누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버림받아서 기회를 쫓아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여기서도 일본 사람들로부터 차별을 받으면서 평생을 살아왔다는 건데요.
이런 현실 속에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매해 두 달 치의 월급 등을 제주로 보내며 고향사랑을 실천해 왔었고요.
또, 이 일본이라는 땅에서도 말 못 했던 과거인 4.3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밝히려 노력했었더라고요.
이 기억의 일환으로 해마다 열리는 게 4.3위령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위령탑도 직접 세웠지만 지금은 재일 4.3유족회 분들도 워낙 고령이어서 세대 전승이 시급한 과제로 보였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제주 4.3이 조금씩 해결의 길로 가면서 보상이나 재심 등 절차가 이뤄지고 있는데, 재일 유족회도 해당이 되나요?
[기자]
요즘 우리가 4.3에 봄이 오고 있다고 말하는데요.
하지만 재일 유족들에게는 아직 이러한 봄의 온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가장 기초가 되는 피해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4.3 당시 희생당한 분이 3만 명 정도 된다고 추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결정된 희생자와 최근 추가 희생자 신청을 받아도 2만 명 정도에 그치거든요.
그럼, 나머지 만 명은 어디로 갔을까?
이들 중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하지만, 재일제주인 가운데 인정된 4.3희생자는 고작 70여 명, 유족도 800여 명에 그칩니다.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추가 진상조사가 이뤄지긴 했지만 그 대상자에 '재일제주인' 이라는 식으로 명시가 돼 있지도 않았고, 이마저도 용역 조사 당시 개인정보 접근이 제한되면서 여러 한계가 있었습니다.
추가 조사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앵커]
그래도 최근 오사카 총영사관에 4.3 전담 인력이 배치됐다면서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제주도가 2년 전부터 오사카 총영사관에 4.3전담 인력을 배치해서 보상과 가족관계 정정 신청을 받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보상금 신청 9백여 건이 접수됐습니다.
다행스러운 부분인데요.
하지만, 이 역시 최대 만 명정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재일 4.3희생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고요.
또, 일본에도 4.3으로 호적이 뒤엉킨 경우가 상당하더라고요.
이 가족관계 때문에 아직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르신들도 만나봤는데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가족관계 정정 신청도 시급히 이뤄져야 하고요.
무엇보다, 4.3 유해와 행방불명자를 찾기 위한 유가족 채혈사업을 재일 유족회까지 확대할 필요성도 느끼고 왔습니다.
이곳 제주에서, 또 우리나라에서는 4.3이 조금씩 해결돼 가는 분위기지만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기자]
제주 4.3기록물이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세계인의 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여기에는 왜곡됐던 4.3을 바로잡으려 끊임없이 기억하고 이를 기록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요.
사실 역사는 영웅들의 이야기 같지만 진짜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긴 평범한 사람들의 손에서 완성됩니다.
일본에는 아직 가려져 있는 4.3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이 남아있지만 이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미진합니다.
산 자들의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이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세대를 건너서도 전승하는 일이 빨리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네, 그런 일을 위해서 나 기자도, 우리 언론도 많이 노력해야겠네요.
설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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